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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 제작과 OGP 협업

[홍윤희] 공공 데이터를 축적할 때는 시민이 진두지휘 하더라도, 그것을 업데이트하고 축적하는 기술은 공공이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Editorial Team2018년 09월 01일 

글쓴이 홍윤희 이베이코리아 이사는 2015년, '장애가 무의미한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무의'를 설립하고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무의의 '서울시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2년 동안 만들면서, 올해 서울시의 OGP(Open Government Partnership: 열린정부파트너십)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담당 공무원 분들과 실무 미팅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적어본다.

(Disclaimer: OGP-정부시민파트너십 협업의 경험은 아직은 매우 초기 단계에 있다. 앞으로 만들어 가게 될 모습이 단순히 환승지도라는 결과물 뿐 아니라, 정부-시민 파트너십의 새로운 모델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덧붙여, '아무도 안 가본 길'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OGP를 담당하고 계시는 담당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시민이 제안하고 정부가 파트너를 이뤄 실현해 가는 정책

아직은 협업의 초기 단계라서, 몇 달 후가 되어야 OGP의 효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OGP는 능력이나 역량이 있는데 서로 협력하기 어려운 부처'를 묶어서 시너지를 내기 위해 '시민의 열정 또는 의지'를 불쏘시개로 쓰는 프로그램이다.

열린정부파트너십은 국제 협회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거버넌스 체계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OGP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초기에 프로젝트를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가 나야 앞으로도 시민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불쏘시개로 적극적으로 쓰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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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자기효능감, 성취감을 가질 수 있으려면 열의를 태워줄 수 있는 연료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프로그램 운영 초기단계라 그런지, 추진예산을 어떻게 배정받아야 할지 시민과 담당 공무원이 직접 고민해야 하는 구조다. 물론 그 와중에서 예기치 않게 시민에게 정치적, 행정적 역량(?)을 키워 주는 부수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일반 시민이 어떤 예산을 따려면 어떻게 접근하면 된다는 식의 정보를 학습하게 된다는 것은 좋은 구조는 아니다. 사실 OGP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지난 2년 동안의 무의 활동을 통해 그런 정보를 불가피하게 많이 축적하게 되었다.

시민이 모은 공공데이터는 누가 업데이트하나?

지금 무의가 만드는 것과 같은 공공 데이터는 모으는 것 자체보다 업데이트하고 잘 가공해서 보여주는게 정말 중요하다. 공공데이터에서 대개 시민의 역할은 한번 모으는 것에서 끝난다. 사실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관광지' 같은 데이터는 제법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데이터의 상당수가 업데이트가 잘 안되고 있다.

심지어 공공시설 데이터를 시민이 모으는 것 자체가 통제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처음부터 지하철 환승지도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휠체어 환승길을 따라 (가령, 일일호프 안내표식처럼) 스티커를 붙여 길 표시를 하려고 했는데 시민이 그렇게 하는 것은 '공공시설 무단 표기'라서 불법이었다. 실제로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하철에서 동영상 찍고 있으면 역무원들이 달려와서 "촬영 허가 받았느냐"며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데이터를 모으기도, 업데이트하기도 쉽지 않은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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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결국 데이터를 모으게는 되었지만, 사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데이터를 한 번 모아서 ‘환승지도'라는 것 하나를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공공데이터로 정의하고, 그것을 잘 업데이트되고 많이 사용되게 하는 것이다. 그 데이터가 순수하게 공공의 영역에 속한다면, 즉 그 데이터를 통해 사업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공공기관에서 그 데이터를 업데이트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통약자 지하철 환승정보의 경우, 그 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그동안에는 없다 보니 정보 축적과 업데이트를 하는 구조 또한 당연히 없었다.

업데이트를 하려면 정보를 받아야 하고, 예산이 필요하다. 직접 데이터를 쌓는 작업을 하면서 그 금액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문제는 정보 협업의 구조다. 그동안에는 정보를 갖고 있는 부서에게 왜 이 정보가 필요한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하철 환승정보의 경우 필요 정보를 얻기 위해 협업해야 하는 부서가 서울시 산하 부서뿐 아니라, 국토교통부 산하 부서인 코레일, 민간 사업자 등 아주 복잡다단하다.

어쩌면 무의의 교통약자 환승지도 프로젝트가 이 정도 진전된 것도 내가 일반 시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조직 내의 어떤 열의있는 공무원이 시작한 것이라면 오래지 않아 지쳐 포기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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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들

내가 만난 공무원분들은 대부분 아주 능력있고 똑똑하다. 그런데 그들이 소속된 공공기관은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의 상당부분이 '그래서 이거 예산은 있나?' '없으면 못하겠네' 같은 내용을 것을 파악하는 데 소모해야 하는 업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민간기업의 경우,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업무 자체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해도 사내벤처니 해커톤이니 아이디어컨테스트니 태스크포스니 하는 다양한 제도가 있어서 직원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칸막이 없이 협업하는 구조를 하나 둘씩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공무원들은 갖고 있는 엄청난 능력을 일 자체가 아니라, '이 일은 추진할 수 있는 것인가'를 파악하는 데 낭비하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누구나 무기력해지고 있던 능력도 발휘 못하게 되지 않을까? 그나마 내가 현장에서 만난 분들은 열의가 있는 분들이 상당수였다. 다짜고짜 찾아온 나와 같은 시민에게 뭐라도 하나라도 도움 주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열의를 보여준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이렇다:

  1. OGP가 효과를 거두려면 시민이 제기한 문제의식이 칸막이 행정에 막혀서 좌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공공 데이터를 축적할 때는 시민이 진두지휘 하더라도 그것을 업데이트하고 축적하는 기술은 공공이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첨언을 하자면

공무원 조직간 협업: OGP가 그나마 시민의 열의를 불쏘시개 삼아 칸칸이 쳐 있던 부처별 장막을 걷어내는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다. 아울러, 각종 부처와의 협업 과정에서 정부가 상당히 좋은 데이터나 역량을 갖고 있는데, 그 데이터들이 대부분 '꿰어야 보배'라는 걸 느꼈다. 그 구슬을 꿰는 실 역할을 하는게 시민의 열정이다.

부서별로 서로 어떤 역량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목격했다. 시민이 제안한 정책 때문에 부서끼리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서로 이러저러한 역량과 정보가 있음을 알게 되고 놀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시민의 인식: 설명회 때 무의 발표를 듣고 있던 청중께서 저한테 약간 한심한 듯이 "정부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인 거 같은데 왜 시민 입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게 하고 있냐"며 혀를 끌끌 차는 걸 듣기도 했다. 잘 몰라서 빙빙 돌아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민과 리서치를 하면서 비장애인분들께 일종의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경험치를 높이는 캠페인 효과도 있었다. 애초부터 지도를 만드는 것보다 지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도 데이터를 모으는 과정에서 시민과 함께 하고 현장에서 휠체어나 유모차 눈높이에 맞지 않는 표지판 정보를 모아서 다시 지하철 운영 공사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서울 시내 어떤 지하철역들의 표지판들이 슬그머니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내가 진짜 공무원이었다면 이렇게 빙빙 돌아오는 과정 자체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휠체어 눈높이 표지판’이나 ‘휠체어를 타본 후 바뀌는 시민의식’이란 효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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